18세기 유럽 사회에서는 데카르트와 뉴턴이 쌓아 올린 합리주의적 사고와 과학적 경험주의가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악 이론가인 라모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음악에도 적용하여 ‘음악계의 뉴턴’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화성(harmony)이 음악을 생성시키는 근원이라고 보고, 자연 과학적 법칙으로 화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전까지의 논의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라모가 음악의 핵심으로 본 화성 개념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논의에서 시작되었다. 피타고라스는 같은 힘으로 당겨진 동일한 재질과 굵기의 두 현의 길이의 비가 1 : 2(옥타브), 2 : 3(5도), 3 : 4(4도), 1 : 4(두 옥타브)일 때 듣기 좋은 협화음이 발생한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1, 2, 3, 4 네 수를 모두 더하면 10이 된다는 의미에서 이를 특별하게 ‘테트락티스(tetractys)’라고 부르며 우주의 완전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A] 16세기 후반부터는 소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도 시작되었는데, 베네데티는 음이 일정한 주기를 가진 파동이며 높은음일수록 진동수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메르센은 실험을 통해 현의 진동수가 현의 길이에 반비례하고, 장력의 제곱근에 비례하며 선밀도1)의 제곱근에 반비례한다는 수학적 관계를 수립하여 베네데티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소뵈르는 17세기 말에 어떤 악기의 소리가 f의 진동수를 가지는 음으로 들리면, 그 안에는 f, 2f, 3f, 4f, 5f, …… 등과 같은 자연수 배의 진동수를 가지는 음들이 함께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f의 진동수를 가지는 음을 기본음, 나머지 음들을 배음이라고 부르며, 기본음과 배음을 통칭해서 부분음이라고 했다.
라모는 이러한 음향학적 성과들과 자연의 법칙을 끌어들여 화성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는 다성 음악에서 성부2)들 모두를 총괄하는 것이 화성이라고 보고 선율에 대한 화성의 우위를 주장하며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원리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는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원리를 소뵈르가 발견했던 기본음과 그 배음들의 진동수가 이루는 수열, 즉 배음렬에서 찾아냈다. 그는 음들의 진동수 비가 1 : 2(옥타브), 2 : 3(5도), 3 : 4(4도), 4 : 5(장3도), 5 : 6(단3도) 등일 때 사람의 귀에는 아름답고 조화롭게 들린다고 했다. 피타고라스가 현의 길이를 분할해서 음을 만들고 길이의 비에서 협화음을 파악한 것과 달리 라모는 진동수의 비를 통해 협화음을 설명한 것이다.
라모는 이를 토대로 화성의 기초가 되는 기본 3화음을 설명했다. 그는 기본 3화음이 기저 저음이라 불리는 가장 아래 음 위에 음을 쌓아 올린 것이라고 보았다. 으뜸화음(도-미-솔)은 ‘도’를 기저 저음으로 하여 3도 위의 ‘미’, 5도 위의 ‘솔’로 구성되는 화음인데 ‘도-미’ 사이 음정은 진동수 비로 4 : 5를 이루고 ‘도-솔’ 사이의 음정은 2 : 3이 된다. 으뜸화음에서 형성되는 또 다른 음정은 ‘미-솔’인데 이것은 5 : 6이 된다. 으뜸화음 속에 형성된 음정은 4 : 5 : 6의 비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협화음이 잘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원리로 ‘파’를 기저 저음으로 하는 버금딸림화음(파-라-도′3)), ‘솔’을 기저 저음으로 하는 딸림화음(솔-시-레′)의 진동수 비도 4 : 5 : 6으로 같은 협화도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렇게 라모는 화음의 협화도를 바탕으로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규정하고, 조성 음악4)도 역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설명했다. 그는 협화음은 역학적 평형 상태로 안정 상태에 대응되며, 불협화음은 안정 상태를 바꾸려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음정의 단계적인 변화를 중시하는 선율 중심에서 화성 중심으로 음악의 문법을 바꾼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라모는 조성 음악이 가지는 음악적 구조에 맞게 작곡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고 당시 대위법5)이 주를 이루던 작곡 교육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말엽부터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대중문화의 확산, 과학 문명의 발전에 따른 인간 소외 현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급격한 사회 문화적 변화 속에서 기존의 예술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이 시기에는 과학적 사고나 사물에 대한 객관적 묘사보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억압된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중시했던 표현주의 예술 사조가 등장했는데, 무조 음악은 표현주의의 경향을 음악 분야에서 실천한 것이었다.
㉠무조 음악은 조성 음악의 전통을 ⓐ해체하려고 한 것이다. 조성 음악에서는 모든 음이나 화음은 중심음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부여되지만 무조 음악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부정하고, 각 음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구성된다. 무조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인 쇤베르크는 전통적인 7음 기법이 아닌 12음 기법을 사용하면서 1옥타브 안의 12개 음에 모두 동등한 자격을 주어 이를 일정한 산술적 규칙에 따라 배열했다. 화음 구성도 3도의 누적을 사용하지 않고 4도의 누적을 사용했으며, 2도, 7도 음정을 많이 사용하여 조성감을 약화시켰다. 쇤베르크가 그러한 방법을 사용한 이유는 특정 음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조성 음악을 통해서는 자유로운 표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 음악은 일반 감상자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불협화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매우 당혹스럽고 난해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반응은 ㉡표현주의 미술에 대한 반응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표현주의 미술에서는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사물의 겉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칸딘스키는 선, 면, 색의 다양한 ⓒ조합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 그의 작품 세계는 점차 추상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이 일정한 형체에서 구상적 미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고 난해하게 느껴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조 음악 역시 전통적인 미의 관념을 해체하고 현대 사회의 모습을 새로운 방식으로 반영하려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 것이다.